어떠한 공동체이던지 간에 공동체에는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기본 룰이 있다. 하다못해 섯다 놀음을 하는 판에서라도 대마이 쓰다 뽀록나면 오함마로 손을 찍는다던가 하는 정도의 기본 룰은 있을진대, 명색이 공동체에 룰이 없어서야 쓰겠는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적어도 병역의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공동체의 룰로 자리잡고 있다. 명목상 빈자와 부자, 권력의 유무에 상관없이 신체건강한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누구나 군대에 끌려가는 것이 결코 긍정적인 일은 아니다만 김규항 선생의 말따나마 더러운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죄라면 죄이므로 눈 딱 감고 썩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룰 중의 하나이다.
신체 건강한 성인남성이라면 누구나 그 힘들고 괴로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별다른 저항이 없는 것은 군대가 '조국을 지킨다'는 거창한 당위가 아닌 '빈부고하를 막론하고 아무도 빠질 수 없다는' 공동체의 룰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다. 물론 숨을 쉬면 입김이 그대로 얼어붙는게 보이는 전방과 겨울에도 땀이 나는 후방의 사무실이 같을 수야 없겠지만 -그리고 각각 그 곳으로 가는 사람들의 출신 성분이 평등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병역은 만민 앞에 평등하다는 명목상의 대 원칙은 누구도 넘볼 수도 건드릴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원칙의 헛점을 타고 넘어가려 했다는 혐의만으로도 서른 살이 넘은 쌍둥이 아빠를 붙잡아다 군대에 다시 집어넣고, 항문에 힘쓰느라 혈압이 높아진 의대생들은 아예 감옥에 가두어 버리기도 했다.
어제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가 '영어교육요원' 양성 계획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그 내용을 언급하기 참으로 부끄러우나 간단히 요약하자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원들은 각급 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하는 것으로 병역을 갈음한다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참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발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유창한 영어실력은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 계층을 구분짓기 위한 척도로서 이용되어 온 수단이라는 점이다. 영어의 유창성, 소위 말하는 native fluency야 말로 그 사람이 발을 딛고 있는 사회 계급 - 성장 배경, 교육 수준, 재산 - 등을 총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인수위의 이와 같은 계획은 '상류층 자제는 군대 보내지 않겠다'의 다른 표현에 진배없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일관된 각종 영어우대정책은 영어의 유창성을 지금의 계층짓기, 계급짓기의 차원을 넘어서 고착된 신분의 척도로 만들고자 하는 발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는데, 이번의 '영어교육요원' 양성 계획은 그러한 발상의 정점에 있다.
아무리 새 집 지어놓고 이팝 고깃국에 따순 물 틀어준다고 해도 군대는 여전히 군대다. 모두가 얼싸안고 총을 내려놓는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대한민국 안에서 가장 멀고 외진 곳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며 공동체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집단이 군대라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가올 이명박 정부의 세상 아래서도 서민의 자식들, 돈도 없고 빽도 없으며 단지 영어를 날 때부터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죄라면 죄인 이들 젊은이들은 지금처럼 손등이 터지는 칼바람 속에 '북괴'의 도발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불철주야 경계를 서고 홍수가 나면 삽자루를 둘러메고 흙을 푸러 갈 것이며 심지어 유조선 옆구리가 터지면 보트라도 타고 달려가서 바윗돌에 걸레질도 치곤 할 것이다. 허나 서민의 자식들이 그렇게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저당잡힌 채 공동체의 무사안녕을 몸으로 때우고 있을 때 자신의 신분 재생산을 위해 복무하는 젊은 귀족들은 그 희생을 발판 삼아 호의호식 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병역 앞에 만민평등'이라는 공동체의 룰이 공공연히 깨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극단적인 언사를 빌리자면,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서민의 자식들은 춥고 더럽고 힘든 곳에 잠재적 총알받이로 끌려가서 썩다 나오는 것'이고 '귀족의 자식들은 학교로 가서 제도가 계급의 재생산 기제임을 그 스스로 증명하는 것으로 병역을 마치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제 아들 보내야 할 곳에 남의 자식을 대신 세우는 작자들, 그리고 그 음탕한 거래에 자신을 내맡기는 젊은이들을 우리는 ______들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제 제 아들 보내야 할 곳에 남의 자식을 대신 세울 수 없는 개명천지가 되고 보니 그동안 별의 별 꼼수들을 다 만들어냈는데 제 아이들을 미국인으로 만드는 것이 그것이었다. 괌에서, LA에서 태어난 미국인 아이들이 공동체를 위한 기여없이 사회지도층 인사의 반열까지는 올라서는 데 까지는 성공했건만 어딘가 허전한 것이 사실이었을게다. 미국인을 만들어 놓으면 판사도 검사도 공무원도 할 수 없잖아. 그래서 이미 낳은 자식은 '외국인 공무원 임용 허용'으로 길을 열어주었는데 이제 그것도 모자라 앞으로 낳을 자식은 다른 룰을 적용받도록 하자는 것이 이제 힘받은 '새로운 ______들'의 주장이다.
제 아들 보내야 할 곳에 남의 자식을 대신 세우는 구세대의 ______들도 '누군가는 거기 서 있어야 한다'는 공동체의 룰을 뒤흔드는 발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저 쉬쉬하면서 야 뒤로 빠져 빠져하면서 빼내는 것이 전부였을 뿐. 이제 새로운 세대의 ______들은 대놓고 '내 자식은 안 보낼테니 너희가 서있거라'라는 교시를 내리고 있다. 이미 이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 공동체'에 발을 디디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음을, 대한민국은 신분으로 완벽하게 나뉘어져 있음을 그들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도 이명박 정부는 국민 주권의 원천인 국민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모든 교육을 영어로 해도 되겠요?" "영어 잘하면 영어 선생 시키고 군대에 안보내도 되겠죠?" 같은 것은 장난이 될 정도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층을 지우고 구분을 짓기 위한 시도에 '교육경쟁력' '국가경쟁력' 같은 포장을 씌워 물어올게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가장 적확한 대답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싫어. ______야
* 이탤릭체로 표기된 부분은 김규항 선생의 '개새끼들'이라는 글에서 옮겨온 표현입니다.